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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계란 (Diary)/일상

노승환 작가와 북촌을 걷다. (세기P&C 리코 GR 북촌출사 후기)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한 겨울 답지 않은 날씨들이 마냥 싫지만은 요즘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는 어김없이 쇼핑몰을 보고 있었다.

할인 이벤트는 없나 찾던 나의 시선에 한 배너가 눈에 띄었던 것 같다.

GR3든 3x든 처음 사게 되면 매뉴얼을 보든, 먼저 쓰는 사람의 조언을 듣든 스승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에서는 입문용 바이블처럼 추천되는 영상이 있는데 이 영상 속 인물이 한국의 GRist인 노승환 작가다.

결국엔 개인의 취향과 습관에 맞게 변하겠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막연하다면 해당 영상을 참고하는 것 만으로 당장 내일의 촬영이 간편해질 정도니 참고해 보자.

사진에 관심이 많고, 이걸 즐기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사진전 정도는 꼬박꼬박 챙겨 다니며 쌓인 도록도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작품과 해설을 보고 배우지 못하거나 생각지 못한 기법과 연출, 의도에 감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혼자의 사색과 깨달음은 굉장히 고귀한 것이라 그만큼 더디고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프로 사진가와 직접 대화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작품을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수많은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심지어 나와 같은 카메라를 쓴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이 좋은 기회였다.

참여하게 된 목적은 다음과 같다.

  •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명확한 카메라다. 이걸 어떻게 극복하며 사용하고 있는지.
  • 유난히 밖에 나가면 사진을 그렇게 망쳐온다. 덜어내는 방법에 대하여.
  • 작가 스스로의 프레이밍 방식, 노하우에 대해.
  • 프로가 사용하는 GR의 한계에 대한 궁금증.

결과만 짧게 말하자면 덜어내는 방법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였지만 나머지는 만족한 출사였다고 생각한다.

행사가 진행된 곳은 북촌의 학민재였다.

조금 엉뚱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북촌 5경과 6경이 굉장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 굉장히 중심에 있는 셈이다.
이전 야간 출사의 위치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반가웠고, 장소 선정은 굉장히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전철을 몇 개 놓친 덕분에 안국역 부터는 뛰어서 이동했는데 뛰기엔 그리 만만치 않았다.
올라가는 언덕길 부터 안내를 위한 표지판들이 보였고, 입구의 계단부터는 장소의 멋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잘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순서상 작가와의 질의응답, 간단한 점심 식사 이후 출사가 진행 됐기 때문에 상당 시간은 이렇게 학민재 내부에 앉아서 진행했다.
일부 좌석은 등받이가 있는 좌식의자였고 대부분은 일반 방석이었는데 이 부분은 행사 마지막엔 조금 아쉬움이 느껴졌다.
식사는 간단한 샌드위치와 차 등이 제공됐고 맛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질의 응답때는 모인 인원 대비 많은 질문이 나오진 않아서 눈치 보지 않고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GR3/3X를 체험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을 포함해 다양한 수준의 사용자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게 행사의 의도였기에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세기 P&C의 관계자와 작가님이 뽑아 놓은 스팟을 위주로 방문한 뒤 자유 촬영 시간이 이어졌다.

내 행사 참여 목적이 '야외에서 덜어내기'였기에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스팟의 풍경 등은 별로 담지 않았다.
대신 흑백 사진과 정방형의 편집에 대해서는 충분히 많은 시도와 고민을 해 봤던 것 같다.

사진은 찰나의 미학이라고 하던가? 빛의 예술이라고 하던가?
색깔이 빠진 사진이 맛이 없을 것이라고만 여겼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됐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덜어내는 법도 크롭이라는 선택지를 통해 조금은 해소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다가가거나 멀어지는 것, 줌을 당기거나 미는 것 외에 잘라낸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추가돼 이전의 사진을 다시 한번씩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조금 재밌었던 점은 내가 느꼈던 GR의 단점을 작가도 그대로 느끼고 있었고, 이미 극복 하려는 전철을 밟았다는 점이다.
질의응답에서도 단점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극복하거나 보완하는지에 대한 대답에 작가님은 '포기했다.'라고 답변을 했는데 모두가 공감하는 듯 행사 내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져 나왔었다.

사진 자체에 대한 생각도 공유할 수 있었다.
한국의 사진내 초상권에 대한 문제와 보정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볼 수 있었는데 모두 명쾌한 해답은 아니지만 작가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은 어떻게 이것을 해결하는지, 프로들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영양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초상권에 대한 부분은 뒷모습을 찍는다던지 실루엣을 찍는다던지의 흔한 해결책(솔직히 더 나은 게 있는지 모르겠다.)에 대해 언급했고, 보정에 대해선 '사진' 자체에서 촬영과 보정을 복합적이지만 구분되는 장르로 취급하는 관점이 신선했으며 특히 보정 부분은 AI나 소프트웨어가 상당 부분 침범하는 것 같다는 최신 의견도 흥미로웠다.

작가님의 편집 방법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주로 사용하는 정방형의 크롭을 위해 사진의 80% 가까운 부분을 덜어내는 부분은 인상적이었고, 크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전신주와 전선에 대한 아쉬움도 들을 수 있었는데 '존경하는 작가님의 전시에는 이 전선만 찍는 작업도 있었다.'라는 정보도 마침 전선을 찍은 사진이 있어 흥미롭게 들었다.

이후에는 간식을 먹으며 각자 3장의 사진을 골라 함께 보며 참여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겨울철의 출사는 체력 소모가 심하기에 참가자들도 많이 지친 눈치였고, 아무래도 작가님의 멘트가 가장 많다보니 피로도도 높아 후반으로 갈수록 텐션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마치 전시회에 온 것처럼 세기P&C 관계자 분들과 참가자들의 감탄이 나오는 사진들도 더러 있어 눈이 즐겁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한 수 배우는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행사의 마지막은 작가님이 선정한 참가자들의 소원에 대한 상품 증정이후 단체 촬영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행사와 관련된 굿즈들도 잔뜩 받아왔다. 아무래도 가장 마음에 든 건 GR 브로치가 아닐까...?
늦게 도착한 덕분에 선택권이 별로 없었지만 배부 예정 된 브로치들 전부 예뻐서 수집 욕심이 생긴 건 덤이었다.

세기 P&C와 작가님 모두 이런 단체 출사를 기획한 것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만족할 만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사실 사진가와 직접 이야기를 할 기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 기회는 애플 명동에서의 김재훈 작가와의 세션이었는데 이때와 작가에 대한 소개, 작품의 의도와 철학, 간단한 질의응답, 촬영 체험, 리뷰까지 대부분의 플로우는 비슷했지만 작가와의 거리가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한다. 이번 출사의 작가와 참가자들의 거리는 똑같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의 키워드 아래 '배운다.' 보다는 '즐긴다.'라는 느낌이 강해 훨씬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출사 자체에 2시간 이상을 할당하면서 충분히 체험할 시간과 숙달할 시간, 그리고 참가한 사람들에게 이 기회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또, 작가님의 성격 때문인지 정말 허울 없이 사소하고 엉뚱한 질문도 할 수 있었다는 점. 같은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프로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던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은 의자가 조금은 불편했고, 빔프로젝트가 사진을 충분히 표현해 주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내가 너무 촉박하게 도착했던 탓인지 참가자들 간에는 교류가 다소 적다고 느꼈던 점이다. 참가자들끼리 자기 소개를 하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면 행사 후반에 있었던 작품 감사이라던지 출사 자체가 조금 더 화목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애플의 행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꼈던 걸 생각해 보면 제한된 시간에 이런 시간까지 할애하긴 너무 촉박한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듯 프로 사진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사진을 즐기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굉장히 희소한 기회다. 그렇기에 이런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기꺼이 참여하겠지만, 이렇게 즐거운 행사라면 더더욱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준 세기P&C와 시간 내 주신 노승환 작가님께 감사를 표하며 글을 줄인다. :)